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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를 좀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을 만나는 순간, 내가 이광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그 이름이 언급되는 걸 많이 봐 왔다는 얘기일 뿐, 구체적인 내용도, 체계적인 지식도 아닌 셈이었다. 『무정(無情)』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 받는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라는 국어 과목의 지식과 일제 시기 친일 행적으로 대표적인 ‘친일 문학가’라는 역사적 지식이 그의 이름과 함께 내게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무정』은 고등학교 시절 읽었으니 아주 어렴풋하나마 기억에 남아 있다. 왜 이 소설이 대단한지 그때 잘 몰랐다. 물론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지금도 그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가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만, 이전의 행적(이를 테면 2.8독립선언서 작성, 상해 임시정부 참여와 같은 독립 운동)에서 왜 그렇게 변절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 행적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이광수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른다. ‘춘원(春園) 이광수’와 ‘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의 간극을 우리는 잘 모른다. 이광수가 어떤 인물인지,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흥미롭다. 먼저 일본인(대학생)들을 위한 책으로 쓰인 것을 번역하면서 다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고친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것을 감안할 수 있으면서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뭐니뭐니 해도 인상 깊은 것은, 이광수의 삶이다. 평안도 시골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것도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고아로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구차스럽게 살다 인생의 여러 차례의 우연적 계기를 통해 조선의 최고 문사(文士)가 된 게 바로 이광수다. 그에게 격동하는 조선, 대한제국의 상황은 어쩌면 기회였을 것이다. 만약 안정스런 사회였으면 그의 삶은 그렇게 올라서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극적인 삶을 살았을 때 보이는 어떤 속물적인 경향이 그에겐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분명 ‘민족의식’이라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성격 상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안창호 등의 자강 운동에 더 많이 경도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족개조론도 그 연장선이고. 그러나 안창호가 끝까지 독립운동가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면, 이광수는 이른바 ‘대일협력’의 길로 들어섰다. 어쩌면 일본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그에게 그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조선을 위한 한 방도로써 ‘대일협력’이었을 뿐이었겠지만(그래서 그는 해방 이후에도 스스로 ‘친일파’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친일파’에 대한 용서를 주장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분명한 ‘친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민족을 위한 친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생각에 호응을 한 이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걸 인정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하는 일이 민족을 위한 일이라 믿었는데, ‘대일협력’을 하기로 한 이상 흉내만 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도, 이광수라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 아이러니한 점을 제공하는 게 아닌가 싶다. ‘춘원(春園) 이광수’와 ‘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의 간극은 조금은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의 공과(功過)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무정』이 발표된(1916년) 지 100년이 더 지났음에도, 해방이 70년도 더 지났음에도, 우리의 문학도, 우리의 역사도 평가할 것이 아직도 많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싶다.
이광수의 눈에 비친 일본,
식민지 조선이 놓인 시대적 공기를 포착하다
문학과 정치, 민족과 반민족의 이분법을 넘어서

이광수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 여전히 ‘한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대 ‘친일파=반민족주의자’의 해묵은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문학은 정치의 논리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학 옹호론과 대일협력자의 문학은 문학으로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정치주의는 일견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학과 정치, 민족과 반민족의 이분법에 갇혀 정작 이광수 그 자체에 대한 이해에 소홀하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광수를 평가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광수가 ‘친일 인사인가 탁월한 문학가인가’라는 역사적 평가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그저 그의 문학을, 그의 삶을 펼쳐 보이면서 이광수를 있는 그대로 되살린다. 이광수는 ‘힘’에 매몰되어 있었다. ‘일본’은 그러한 ‘힘’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현실태였다. 이광수에 대한 이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어판 서문
책머리에
이광수 연보

I. 유년시절-몰락, 야심이 싹트다

1. 성장과정
탄생|나라와 집안의 쇠퇴|전통문화의 세계
2. 동학과의 만남과 러일전쟁
동학과의 만남|손병희의 문명개화노선|‘삼전론’의 제자

II. 일본 유학(1905~1910)

1. 멸시-20세기 초반의 아시아인 유학생
‘문명’의 충격|일본 유학생의 계보|아시아의 유학생들|불쾌한 몇몇 사건들|거세지는 아시아 멸시
2. 동학 교단의 분열과 귀국
어학학교 ‘도카이의숙’ 입학|한국의 보호국화-제2차 한일협약 체결|다이세이중학 입학과 홍명희와의 사귐|귀국과 단지사건
3. 메이지학원 편입-문학소년의 길로
하쿠산학사와 마루야마후쿠야마초|메이지학원 보통학부에서의 학창생활|기노시타 나오에, 톨스토이, 바이런|기무라 다카타로의 바이런 문학계의 대마왕 |제국주의시대의 통념|루쉰과 이광수, 서로 다른 영향
4. 초기의 창작-일본어와 조선어의 구사
영화의 ‘번역’|이언어 창작-일본어 단편 〈사랑인가〉와 조선어 단편 〈무정〉|소설의 모델이 된 이광수| 신 한자유종 제3호|귀국의 여정

III. 교사생활의 좌절에서 대륙방랑으로(1910~1915)

1. 오산학교-윗연배뿐인 학생들
이승훈과 안창호|오산학교 부임|‘시로가네의 세계’와 ‘오산의 세계’
2. 한국병합의 충격
‘힘’에 대한 희구|헌신에서 갈등으로|배척사건
3. 대륙방랑의 길-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치타
빈번한 우연|상하이-독립운동가들과 함께|블라디보스토크|무링|치타|〈공화국의 멸망〉|다시 도쿄로
4. 와세다대학 입학-반일사상과 특고의 감시
5년 만의 도쿄|1910년대 유학생들|두 개의 투고-상반된 표현

IV. 무정 의 시대-명성의 획득과 3·1운동

1. 조선총독부 ‘기관지’의 의뢰
아베 미츠이에와 나카무라 겐타로| 매일신보 에 글을 쓴 이유|춘원春園 이광수|욕망의 교육과 〈자녀중심론〉|〈우리는 금일 어떻게 아버지가 될 것인가〉
2. 무정 의 집필-한국 근대 초기 문학작품의 배경
무정 의 탄생| 무정 의 줄거리|과도기의 조선을 그린 ‘시대의 그림’|‘영채 이야기’에서 무정 으로|욕망을 고취하는 소설|계몽의 이면에 자리한 고향의 아내|나혜석-한국 페미니즘의 선구자|허영숙과 결핵| 무정 속의 허영숙
3. 이언어 연재와 사랑의 도피
두 개의 언어로 쓴 기행문 〈오도답파여행〉|사랑의 도피, 베이징으로
4. 독립운동에의 참여-2?8 독립선언서 집필 후 상하이 임시정부로
2?8독립선언서|3?1독립운동|안창호와 흥사단|귀국-명망보다 실질을

V. 수양동우회와 두 개의 신문사(1920~30년대)

1. 〈민족개조론〉에 대한 비판
칩거-〈감사와 사죄〉|〈민족개조론〉과 수양동우회|동아일보사 취직|〈민족적 경륜〉|수양동우회에서 동우회로
2. 투병하의 집필활동-민족애의 고조
높이 평가받은 몇몇 연재소설|결핵과의 싸움
3. 브나로드 운동과 안창호의 체포
인민 속으로-문맹퇴치운동|안창호의 체포와 귀국
4. 절망감-아들의 죽음과 민족운동의 좌절
아들의 죽음|도쿄의 집| 가이조 의 야마모토 사네히코|중학시절 이래의 일본어 소설 〈만영감의 죽음〉|서구문명에 대한 반발의 심화

VI. 대일협력시절-중일전쟁·태평양전쟁기

1. 체포?사상전향의 표명-동우회사건
동우회사건|〈무명〉과 사랑 |허영숙 산원|사상전향 표명-〈합의〉|‘내선일체’의 논리|대일협력을 향한 발걸음
2. 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로의 창씨개명-지식인 학살명부에 대한 우려
일본어 소설 〈진정 마음이 닿아서야말로〉| 룍기 와 경성제국대학|일본어 강제의 강화-누구를 향해 썼는가|최종심에서의 무죄 판결|‘진정보편의 전향’으로|지식인 학살명부와 대일협력
3. ‘대동아전쟁’하의 ‘역할’
‘서양에 대한 반발’의 부상|대동아문학자대회 참가|괴로움의 토로에 대한 비난|학병 지원 권유-일본유학생권유단|민족 생존을 위한 고민
4. 일본어 소설을 집중적으로 쓴 1년
이광수의 일본어 소설|〈가가와 교장〉|〈파리〉|〈군인이 될 수 있다〉|〈대동아〉|〈소녀의 고백〉|춘원의 망상

VII. 해방 후-‘친일’에 대한 비난, 북한군의 연행
해방의 날| 나 와 나의 고백 | 나의 고백 |말미에 붙인 ‘친일파의 변’|‘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습니다’|한국전쟁의 발발과 연행

주요 참고문헌
부록-2?8독립선언서
저자 후기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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