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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해는 1985년,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학교 식당에서 당시 상황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고 나서였다. 뒤이어 당시 상황을 기록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1985년)를 읽고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런 뒤로 내 20대는 해마다 5월이면 어김없이 도청 앞 전야제에 참석을 하고 이튿날 망월동 참배를 하려고 했다. 도청 앞 전야제에는 어렵지 않게 참석할 수 있었으나 망월동 참배는 어려웠다. 참배조차 금지했던 어둠의 시대. 어둠의 시대가 2010년에도 재현되는 듯하다. 5ㆍ18광주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 해마다 기념식장에서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갑자기 금지곡이 된 것. 5월의 노래 대신 준비된 음악은 ‘방아타령’이었다. 5ㆍ18이 잔칫날이라도 된단 말인가.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행사장에 조화 대신 축하 화환을 보냈다. 이러한 것을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지금 우리 상황이 너무 어둡다. 5ㆍ18이 1980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1986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여 4반세기 만에 마무리한 『만인보』의 27권은 그해 오월 사람들을 집중 다루고 있다. 시집 한 권에 특정 시기 사람들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오르내리며 다뤄 온 방식 그대로 이번에도 여러 시기 많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무문토기에 / 조 / 피 / 수수를 따로따로 굴먹지게 담아두’(「옛날 국화 한송이」)던 6,600년 전 조상부터 ‘세 걸음에 한번 / 온몸 던져 / 절하는’(「수경」) 당대의 스님을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들 학교등록금 역전에서 몽땅 잃’(「원주 장일순의 집」)어 버린 할머니 돈을 찾아준 장일순 선생님이며 ‘더위 속에서 / 들리는 소식’ (「6백년 느티나무 밑」) 궂은 소식으로 심심풀이를 하는 노인들을 그리고 있다. 시인의 눈은 사람이 사는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역시 ‘1979년 다음해를 / 1980년이라고 말하지 말자 / 그해라고만 말하자’(「이빨 두 개」)며 그해 5월 사람들을 집중 다루고 있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첫 부류는 피해자다. 피해 상황은 처참하다. ‘젖가슴이 도려진 채 / 교복치마 찢긴 채 / 음부가 난자된 채 / 얼굴과 등짝이 칼에 찔린 채 / 썩어가’(「젖가슴」)는 여학생, ‘군홧발에 짓밟히고 / 진압봉에 깨진 / 부상자들 실어나르다 / 공수 총탄 맞아 쓰러’(「남편 김복만」)진 운전기사, 1980년 5월 27일 ‘마지막까지 남아 / 전남도청 시민군 이끌다가 / 계엄군의 총 맞아 / 죽’ (「윤상원」)은 아름다운 청년, ‘80년 이래 / 5년 내내 / 10년 내내 / 17년 내내 / 20년 내내 / 지독하게도 / 두 아들 무덤에 / 밥 지어 버스 타고 와’ ‘두 아들 무덤 앞에 / 밥 차려놓고 / 생시의 아들인 듯 / 큰소리로 말하’(「밥 묵어라」)는 어머니 들은 모두 그해 5월의 피해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괴뢰 동조하는 불온분자 목 잘라온다 / 그래야 / 네놈들 대한민국에서 살 자격이 있다’(「김개동」)며 지옥훈련을 받다 광주에 투입된 3공수 특전하사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특정인이라고 할 수 없는 해방 공간의 사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 맞아 죽는 진압봉 맞아 죽는 / 피범벅 쓰러지는 / 피범벅 끌려가는 / 그 잔인무도의 거리에서 / 더 이상 나 혼자 비명만 담고 주저앉을 수 없다’며 할멈도 시장 아낙도 여편네들도 그리고 ‘트럭 / 고속버스 / 시내버스 / 스리쿼터 / 지프 / 덤프트럭 들 떼거리로 잇대어 / 죽음의 사슬 죽음의 벽 뚫고 / 한바퀴 한바퀴 나아’(「대폭발」)가 마침내 이룬 대동 해방 세상의 사람 사람들. ‘시민 스스로 질서를 만들었다 / 시민 스스로 / 행정을 시작했다 // 어디에도 술은 없었다 / 술 마시는 자 / 술 파는 자 없었다 / 어느 집도 도둑맞지 않았다 / 은행도 / 문 열린 채 / 절도 강도 하나 없었다 / 생필품 사재기도 없었다 / 쌀집 쌀도 / 가마니쌀로 말쌀로 팔지 않고 / 되쌀로 팔았다 / 라면도 다섯 개 이상은 팔지 않았다’(「공동체」). 해방 공간의 위대한 민중들. 빛고을 사람들다웠다.
외환은행 광주지점
그 학살의 질서들이 도망친 후
자유의 질서들이 나타나기 전
널린 주검들
실려간 거리
신발 한짝들
뿔테안경 쪼가리들
피 묻은 옷가지들
타이어 바퀴짝들
깨진 유리조각들
통곡과 분노들
그 무질서 속에서
광주 금남로 외환은행 문이 열렸다
은행 직원 하나도 없이
텅 비었으나
누구 하나
그 은행의 한푼도 털지 않았다
그 무질서 속에서
바로 자유의 질서 이루기까지
그 도시의 누구도
도둑이 아니었다
뒷날 누가 와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엉엉 울어야 할
아름다운 거리였다고 말할
그 도시의 누구도
도둑이 아니었다
빛이었다
빛고늘이었다
빛고을 모둠밥이었다.
세계적인 시인 고은의 만인보 가 전30권(총 작품수 4001편)으로 완간되었다. 1980년 육군교도소에 갇혀 구상을 시작해 만 30년 만에,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 것, 대미를 장식하는 27~30권은 주로 5·18 광주항쟁으로 채워졌다.
세계 시단에서도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Robert Hass)이라 평가받는 만인보 는 말 그대로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봇물처럼 터져나온 ‘사람들에 관한 노래’가 대하(大河)를 이루어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파도소리에 우리는 경탄할 수밖에 없다. ‘빠리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발자끄에 빗대어 말하자면 가히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이를 만하다. 시인이 선사해준 ‘세상의 삶들, 희로애락들, 세상의 온갖 사연들, 세상의 죽음들’에 귀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의 탄생과 완성의 순간에 동참하게 된다.
시인의 말
옛날 국화 한송이
단군
세종
봉하 낙화암
무명씨
임향순
한 경비교도원
두 소나무
이빨 두 개
김효원
시작
어느 미망인의 유서
이희성
박권영
김준태
황승우
소년 간수 최치수 1
외환은행 광주지점
소년 간수 최치수 2
공자 탄
도망자
이소가야 스에지
정상용
한강 소년
어떤 소년
원천호수
시민군 우두머리 김종배
미친놈 하나
새벽 네시
빈 유치장
정진경
문예
5월 19일
다시 5월 19일
여학생 결의자매
성회
두문
임순임
화려한 휴가
이정
학살풍경화
수경
대폭발
문정현
그날
어느날의 저승 여인들
나눔
시민군
배영종 영감
거짓말
왕세발
젖가슴
시숙 유기남 제수 선호순
공동체
변수동
어느 아주머니
단성사
분수대
월강주
며칠 동안
이청복 중령
최한영
농민군의 아내
박기현
가짜 증손자
어머니 이정애
청년승 정천
밥 묵어라
돼지할멈
고규석
을동리 열녀비
이숙자
세월
기남용
단군 부자
남용이 고향
부여의 시작
김광석
새깃 풍류
광석 부모의 움막
흰말
유골
한 풍경
김상구
아이고바위
남편 김복만
약횡
비명횡사
88세 그녀
분향
숲
김선호
수로의 꽃
김영철
매화당
유족 풍경
함석창
아도
고려 희종
이광영
프란체스카 리
김정선
아직 죽지 못한 신하
김정선의 어머니
장희빈
열여덟살
황지 마누라 덕
김인태 내외
이화
심복례
이원범
지석영
불귀
오종렬
장안국
송복례 남편
원주 장일순의 집
김중식
청화산 서쪽
윤숙자
백호 윤휴
어느 죽음
인모 어머니
선보기
옥순범 영감
김경환
옥정마을
나는 누구냐
두부 젖가슴
조금새끼 제삿날
손병섭
손씨 일가
봉쇄수도원
김말옥
왼새끼 꼬기
어느해 폭설
독한 년!
백일잔치
도술
김경철
씨받이 아낙
경철이 어머니
왼손
김개동
강해수
두 여대생의 밤거리
잉화도
비 오는 날
나비 기생
장사남
죄악증거비
윤광장
오행이
그날밤
이진두
어용수습위
6백년 느티나무 밑
인동할멈
조시민
윤상원
고려 고종
다시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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